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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 엄마는 못 하는 게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날 (구시포 노을캠핑장)

by 카타리 2026. 7. 26.

구시포 해수욕장

아무것도 안 해서 더 좋았던 구시포의 밤

1탄에서 마음 정돈하기 좋은 선운사 사찰과 고창의 고즈넉한 산책길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우리 식구 가슴속에 가장 찐하고 생생하게 남아있는 구시포 바닷가와 캠핑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사실 여러 여행지를 다녀봤지만, 고창에서 제일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무슨 거창한 관람을 하거나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닌 시간이 아니었다. 그저 바닷가에 텐트를 쳐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바람을 맞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우리는 구시포 해변 바로 근처에 자리한 노을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며칠을 묵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원한 바다 냄새가 텐트 안으로 스며들었고, 낮이 되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첨벙거리며 물놀이를 하고, 물이 빠지면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신발도 벗어던진 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와! 우리 엄마는 진짜 못 하는 게 없어!"

구시포 노을캠핑장이 가진 진짜 매력은 바다와 넓고 부드러운 갯벌이 마치 우리 집 앞마당처럼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물이 조용히 빠져나가며 검붉은 갯벌이 드러날 때쯤 되면, 아이들과 나는 조그만 모종삽과 바구니를 챙겨 들고 갯벌 속으로 발을 디뎠다. 발가락 사이로 스치는 미끈거리고 시원한 흙 감촉에 아이들은 연신 발을 굴르며 깔깔거렸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과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 조개를 캐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작은 게나 어린 조개만 나오다가, 어느 순간 내 손 끝에 아주 딱딱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이건 보통 놈이 아니다' 싶어 손가락에 힘을 주고 진흙을 깊게 파헤쳤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진흙 덩어리 속에서 내 주먹만 한 대왕 조개를 딱 캐내어 아이들 앞에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동네가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와! 우리 엄마는 진짜 못 하는 게 없어!”

그 존경과 뿌듯함이 듬뿍 담긴 눈빛이라니. 얼떨결에 갯벌의 영웅이 되어버린 나는 쑥스러우면서도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아이들 눈에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만능인 엄마가 되었던 그 순간의 기분은,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잘 차려진 화려한 놀이공원이나 매끈하게 정돈된 관광지보다, 신발에 진흙이 범벅이 되고 손등에 소금기가 하얗게 말라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목청껏 웃었던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 가족에겐 진짜 진짜 '여행'이었다.

소소하지만 참 편했던 장보기 팁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준비하다 보면 먹을거리나 생필품 짐을 챙기는 게 가장 큰 일이다. 고기며 야채며 바리바리 싸 오다 보면 출발도 하기 전에 엄마는 이미 지치기 일쑤다. 그런데 구시포 노을캠핑장은 위치상 그 걱정을 싹 덜어주는 고마운 곳이다.

캠핑장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나가면 바로 가까운 농협 하나로마트가 나온다.
규모도 제법 커서 저녁에 구워 먹을 싱싱한 돼지고기나 바비큐용 야채는 물론이고, 깜빡하고 챙기지 못한 부탄가스, 큼직한 얼음, 휴지 같은 생필품까지 대부분 그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덕분에 집에서부터 낑낑거리며 식재료를 무겁게 다 싸 짊어지고 오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만큼 마트에서 바로 사다 먹으면 되니 엄마 마음도, 차 트렁크도 한결 가볍고 여유로워진다. 캠핑 초보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이 10분 거리 마트가 얼마나 큰 오아시스인지 잘 알 것이다.

타닥타닥 솔방울 타는 소리, 그리고 붉은 노을

저녁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작은 비닐봉지 하나씩을 들려주고 캠핑장 주변을 거닐었다. 소나무 아래 떨어진 바짝 마른 솔방울을 모으는 게 우리만의 저녁 루틴이었다. 아이들은 누가 더 크고 잘 마른 솔방울을 줍나 내기라도 하듯 눈을 반짝이며 바삐 움직였다.

어스름이 깔리면 아이들이 모아온 솔방울을 화롯대에 차곡차곡 쌓고 불을 지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솔방울이 밝은 불꽃을 피워 올릴 때, 코끝을 스치는 쌉싸름한 솔향과 시원한 밤바다 냄새, 그리고 모닥불 온기 앞에서 나란히 앉아 나누던 아이들의 도란도란한 이야기 소리... 그때는 그저 평범한 여행의 한 장면인 줄만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 정겹고 따뜻했던 저녁 풍경이 가슴 깊은 곳에 가장 오래오래 남았다.

특히 해가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넘어갈 때, 넓은 갯벌 전체가 주황빛, 붉은빛으로 짙게 물드는 구시포의 노을은 휴대폰 카메라 따위에는 반의반도 담기지 않는다. 멋진 사진을 남겨보겠다고 폰을 들고 렌즈를 맞추다가도, 어느 순간 '아, 이건 그냥 눈으로 담아야 하는 거구나' 하고 에라 모르겠다 주머니에 폰을 쓱 넣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저 노을빛을 바라보게 만든다. 여행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거창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바로 그렇게 조용히 마음이 젖어드는 순간에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가슴에 담아둔 고창

고창은 휘황찬란하게 위락시설이 빽빽하거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구경거리가 가득한 동네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상으로 돌아와 바쁘고 지치는 날이면 은근하게 다시 생각나는 곳이다.

선운사 숲길을 천천히 산책하고, 계곡 찻집에서 얼음 동동 뜬 시원한 오미자차 한 잔을 마시고, 구시포 갯벌에서 아이들과 조개를 줍고, 빨간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천천히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차오르던 곳.

머리가 복잡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 마음을 비워내고 싶거나,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흙 만지며 마음껏 웃던 건강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고창으로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온통 따뜻하게 채워져서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