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평은 내게 여행지라기보다 시간이 쌓여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주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곳이고, 별다른 계획 없이 가도 하루가 잘 채워졌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함평을 떠올리면 장소보다 먼저 그때의 장면들이 함께 따라온다. 광주에서 멀지 않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함평을 우리 가족의 단골 나들이 장소로 만든 이유였다.
돌머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던 바다
돌머리는 화려하지 않은 바다다. 그래서 더 좋았던 곳이다. 사람이 붐비지 않고 바람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이라, 아이들과 함께 가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을 오가며 뛰어다니고,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다.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서해 특유의 잔잔한 바다와 노을이, 별다른 계획 없이도 하루를 충분히 채워주었다.
엑스포공원, 마음껏 뛰어놀던 여름
함평엑스포공원은 아이들과 정말 자주 갔던 곳이다. 공원이 넓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고, 부모 입장에서도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여름이면 물놀이장이 개장했는데, 그때는 아이들에게 그곳이 가장 기다려지는 장소였다.
물에 젖은 채로 뛰어다니고, 웃고, 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참을 놀다 지쳐 나오면 그늘에 앉아 간식을 나눠 먹었고, 그 사소한 시간까지도 아이들에겐 여름의 한 장면으로 남은 듯하다. 별다른 이벤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이들이 즐거워했던 기억 때문에 더 좋았던 곳이다.
생태공원, 반딧불이가 남긴 저녁
함평 생태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었다. 동물과 식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잠깐 둘러보고 나오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걷게 되는 곳이었다.
이곳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저녁 때문이다. 어느 날, 남편이 반딧불이를 찾아 아이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작은 불빛 하나였는데도 아이는 너무 신기해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라,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오래 남는 순간이 되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또렷하다. 자연 속에서 아이가 놀라고, 기뻐하고, 웃던 순간. 그래서 생태공원은 내게 참 좋았던 곳으로 남아 있다.
함평양서파충류생태공원, 무서워하면서도 가장 좋아하던 곳
아이들이 가장 강하게 기억하는 곳은 아마 함평양서파충류생태공원일 것이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면서도, 막상 가까이 가면 눈빛이 달라졌다. 비단뱀을 목에 걸어보기도 하고, 개구리를 직접 손으로 잡아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겁을 내면서도 계속 다가갔고,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무섭다고 뒤로 물러섰다가도 어느새 "한 번만 더" 하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나 역시 긴장하며 지켜봤지만, 결국 함께 웃었던 기억이 더 크게 남아 있다. 이곳은 단순히 보는 장소가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겪으며 오래 기억하는 공간이었다. 무서움을 이겨낸 경험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지금도 이곳 이야기를 종종 꺼낸다.
함평에 가면 늘 찾던 생고기 비빔밥
함평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생고기 비빔밥이다. 함평에 갈 때면 우리 가족은 늘 이 생고기 비빔밥을 찾았다. 신선한 육회를 밥에 올려 쓱쓱 비벼 먹는 그 맛은, 이상하게 함평에서 먹을 때 유독 더 맛있게 느껴졌다.
한바탕 뛰어놀고 걷고 난 뒤에 먹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곤 했다. 여행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만큼이나, 무엇을 함께 먹었는지도 오래 남는다는 걸 함평에서 배웠다. 그래서 함평은 풍경과 체험뿐 아니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그 밥상까지 함께 떠오르는 곳이다.
내가 기억하는 함평
함평은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참 좋았던 곳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웃고, 놀라고, 다시 도전하던 시간이 있는 곳. 돌머리의 바람, 엑스포공원의 여름, 생태공원의 반딧불이, 양서파충류생태공원의 생생한 체험, 그리고 늘 함께하던 생고기 비빔밥까지.
그래서 함평은 여행지가 아니라 추억이 쌓여 있는 장소다. 아이들이 훌쩍 자란 지금은 예전처럼 자주 가지 못하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도 그때의 장면들이 하나씩 그대로 떠오른다. 언젠가 아이들이 더 크면,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다시 걸어보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