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1탄에서 왕복 12시간을 달려 봉평 메밀밭과 시장을 털었던 이야기를 풀었다면, 이번 2탄은 우리 가족 평창 여행의 진짜 베이스캠프인 '숙소'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여행 일정이나 동선에 따라 숙소를 꽤 다채롭게 바꾸는 편인데, 인근 강릉까지 묶어서 달릴 때도 있지만 평창에 오면 웬만하면 '켄싱턴'을 1순위로 잡으려고 노력한다. 오래된 만큼 우리 네 식구의 손때 묻은 추억이 장소 곳곳에 가득 배어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며칠 묵었던 또 다른 숙소인 '화이트 호텔'의 묘한 매력까지 보태서, 엄마의 깐깐한 시선으로 두 숙소를 낱낱이 파헤쳐 봤다.
1. [경험] 1년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우리집 방앗간, 켄싱턴 호텔 평창
우리 가족에게 평창 켄싱턴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1년에 한 번은 도장을 찍어야 하는 고향 같은 곳이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서 요즘 새로 지은 번쩍이는 호텔들과 비교하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그 특유의 묵직하고 클래식한 품격이 마음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이곳은 사계절 언제 와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실내외 수영장이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다. 지금은 사춘기가 되어버린 우리 고딩, 중딩 남매도 어릴 적엔 이 수영장에서 물개처럼 살았는데, 지금 봐도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겐 이만한 천국이 없다 싶다.
호텔 주변 인프라도 훌륭하다.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오대산 국립공원이 나오고, 그 유명한 오대산 월정사의 울창한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마음을 정화할 수 있어서 동선이 참 알차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켄싱턴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바로 "호텔 주변에 걸어서 갈 만한 식당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나 : "여보, 오늘 저녁은 대충 호텔 밖으로 걸어 나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까?"
남편 : (스마트폰 지도를 뒤적이더니) "여보, 여기서 걸어 나가면 식당 대신 오대산 산신령님 만날 것 같아. 주변에 불 켜진 곳이 아예 없는데?"
결국 호텔 내 레스토랑을 이용하거나, 차를 끌고 저 멀리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 강제 고립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넓고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과 아이들의 추억을 생각하면, "에이, 식당 좀 없으면 어때? 배달 안 오면 차 타고 나가서 사 오지 뭐!" 하고 기분 좋게 상쇄하게 되는 마력의 숙소다.
🏔## 2. [경험] 산속 더 깊은 곳의 아지트, 화이트 호텔에서의 며칠
이번 여행에서는 켄싱턴 외에 '화이트 호텔'에서도 며칠을 묵었다. 여기는 켄싱턴보다 산속으로 훨씬 더 깊숙이 조용하게 들어가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문을 열고 나서면 찐 강원도 산골짜기의 정취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객실(룸) 개수가 굉장히 많고 구조가 시원시원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여행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야외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저녁에 고기를 구우며 별을 바라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다만, 켄싱턴에 비하면 편의 시설이나 부대시설이 조금 아쉽고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호텔 내부 조경이나 인테리어, 소품 등에서 왠지 모르게 거대 중국 자본의 냄새(?)가 미묘하게 풍겼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과 "여기 약간 대륙의 스케일인데?"라며 쿡쿡 웃어댔다.
물론 여기도 인근에 식당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경사가 심하고 산속이라 무조건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건 켄싱턴과 매한가지였다. 평창 숙소들은 왜 다들 아빠들에게 독박 운전을 강요하는지 모를 일이다.
3. [생각] 시설의 화려함보다 중요한 것, 장소가 주는 '추억의 힘'
두 숙소를 번갈아 묵으며 들었던 생각은, 결국 여행지에서 숙소란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객실이 얼마나 최신식인지, 조식이 얼마나 화려한지보다 "여기서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물장구를 쳤었지", "저 정원에서 남편이랑 커피 마시며 웃었지" 하는 가족의 역사가 겹쳐질 때 숙소는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명소가 된다.
걸어서 갈 식당이 없어서 투덜대면서도 매년 켄싱턴의 예약을 누르고, 산속 깊은 화이트 호텔에서 연기를 들이마시며 바베큐를 구우면서도 행복해하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다. 조금 불편하면 어떤가, 스마트폰만 보던 아이들이 숙소에 오면 옛날 기억을 꺼내며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고 웃는데 말이다.
4. [비판] "룸 서비스나 편의점이라도 좀..." 산속 숙소들의 배짱 영업 아쉬움
그래도 투숙객의 입장에서 두 호텔의 가려운 곳은 따끔하게 긁고 넘어가야겠다.
주변 식당이 없으면 내부 인프라라도 좋아야지 :
켄싱턴은 주변에 도보 이동 가능한 식당이 전무하다면, 호텔 내부의 룸서비스 메뉴를 다양화하거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테이크아웃 스낵바를 더 늘려야 마땅하다. 선택지가 호텔 내 비싼 레스토랑밖에 없다 보니 장기 투숙객 입장에서는 식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화이트 호텔의 2% 부족한 편의 시설과 감성 :
화이트 호텔은 방도 많고 바베큐장도 좋지만, 늦은 밤에 급하게 물건을 살 만한 편의 시설이나 아이들이 즐길 만한 놀이 공간이 너무 빈약하다. 게다가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인테리어 감성은 한국적인 강원도 산골의 매력을 살리기보다 약간 겉도는 느낌을 준다. 투숙객들이 호텔 안에서 시간 때울 수 있는 알짜배기 편의 시설 보강이 절실해 보인다.
평창 숙소 대장정 최종 요약 (엄마의 리얼 팁)
켄싱턴 호텔 평창 : 오래됐지만 품격 있음. 수영장이 최고라 아이 있는 집은 무조건 강추. 주변 오대산 월정사 코스 좋음. 단, 주변에 도보 가능 식당 없으니 저녁 식사 대책 세우고 갈 것!
화이트 호텔 : 산속 깊은 곳 특유의 고요함. 룸 많고 쾌적함. 밤에 구워 먹는 바베큐 낭만이 대박. 단, 편의 시설이 약하고 여기도 식당 가려면 차 타야 함. 미묘한 대륙의 향기가 남.
한 줄 평 : 밥 먹으러 가기 참 험난한 평창 숙소들이지만, 가족의 추억이 빼곡히 쌓여있어 내년 가을에도 결국 또 예약 버튼을 누르게 될 마성의 베이스캠프들이다.
본 포스팅은 켄싱턴이나 화이트 호텔로부터 무료 숙박권은커녕 수영장 타월 한 장 지원받지 않고, "여보, 올해도 내 척추를 평창에 바칠게" 하며 쿨하게 카드를 내어준 남편 돈으로 직접 결제해 묵고 온 100% 내돈내산 리얼 숙박 유람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