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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가족 여행 1탄] "왕복 12시간, 또 속아서 간다!" 고딩·중딩 남매 뒷목 잡게 한 가평 너머 평창 켄싱턴&봉평 메밀밭 표류기

by 카타리 2026. 7. 12.

봉평 막국수

우리 가족이 평창, 그중에서도 가을 평창에 환장한다는 건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내가 가을 바람만 불면 "효석문화제 가야 해!" 하고 짐을 싸니, 매년 가을이면 자연스럽게 평창으로 향하게 됐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평창 여행은 결심하는 순간부터 온 가족의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우리 집에서 평창까지 무려 왕복 12시간! 가면 너무 좋은 걸 알면서도, 출발 전부터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엔 "또 시작이네" 하는 은근한 부담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 징글징글한 장거리 레이스를 뚫고 다녀온 우리 가족의 생생한 가을 유람기다.

1. [경험] 소금 뿌린 메밀밭의 감동과 허영만 식당의 웨이팅 기적

평창 가는 길은 매번 '교통 잔혹사' 그 자체였다. 기차를 타자니 서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평창으로 환승해야 하는 눈물겨운 동선이 나왔고, 예전에 기대했던 양양공항 국내선은 우리 지역 노선이 싹 끊긴 지 오래였다. 결국 매번 남편이 독박 운전을 자처하며 차를 몰고 가야 했다. 평창 자체가 워낙 넓어서 자차가 없이는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동네였기 때문이다.

엉덩이에 땀이 차도록 12시간 가까이 차에 갇혀 투덜대던 고딩 아들과 중딩 딸내미의 입을 싹 닫게 만든 첫 번째 치트키는 역시 '봉평 메밀밭'이었다. 9월 초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면에 들어서면 온 들판이 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여 눈이 멀 것 같았다. 단풍처럼 화려하거나 진하지 않은데, 소금 뿌려놓은 듯 새하얗고 잔잔한 그 풍경 앞에 서면 12시간 동안 쌓인 운전 피로와 짜증이 봄눈 녹듯 스르르 사라졌다. 처음엔 무뚝뚝하게 서 있던 사춘기 남매도 어느새 꽃밭 사이를 나비처럼 뛰어다니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메밀밭에서 감성을 가득 충전하고 나니 슬슬 배꼽시계가 울렸다. "평창에 왔으면 당연히 메밀국수지!"를 외치며 무작정 봉평 시장 쪽으로 향했다. 대충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대충 때우려던 찰나, 남편의 매서운 레이더망에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나왔다는 숨은 맛집이 걸려들었다.

가을 축제 시즌이라 이미 가게 앞은 인산인해,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차에 오래 갇혀있던 아이들이 "엄마, 꼭 기다려야 해?"라며 징징댔지만, 굳건히 버틴 끝에 입성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다린 보람이 차고 넘쳤다. 시원하고 깔끔한 메밀국수는 물론이고, 야들야들하게 잘 삶아진 보쌈에 쫀득한 메밀전까지 곁들이니 고딩 아들은 폭풍 흡입을 시전했다.

나 : "거 봐,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메밀전이 떡하니 떨어진다니까?"
남편 : (막걸리 한 잔이 절실한 눈빛으로) "이 보쌈에 메밀국수 한 젓가락이면 6시간 운전 피로가 다 날아가네. 기다리자고 해줘서 고마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문을 나서니 바로 활기찬 봉평 전통시장이 펼쳐졌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이 딱 장날(봉평 오일장)이라 운 좋게 시장이 열려 있었다. 알록달록 피어난 가을꽃 구경에 시장 특유의 정겨운 풍경까지 더해져 눈이 즐거웠다.

시장을 돌며 고소한 땅콩과 갓 튀겨낸 바삭한 뻥튀기, 그리고 봉평의 특산물인 메밀차를 구입했다. 특히 이 메밀차는 독특하게 현미처럼 볶아진 형태로 되어 있어서,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는 차 용도 외에도 그냥 입이 심심할 때 한 줌씩 입에 털어 넣는 간식 대용으로도 바삭하고 고소하니 그만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시장 주차장도 꽤 넓고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서 차를 대고 이용하기에 무척 편리했다.

2. [생각] 화려하지 않아 더 짙은 여운, 우리가 매년 평창을 찾는 이유

매년 평창에 발을 디딜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신기한 동네였다. 요즘 유행하는 핫플레이스처럼 자극적이거나 삐까뻔뻔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가을 한 철 조용히 피었다 지는 소박한 메밀꽃, 그리고 투박하지만 정이 넘치는 시골 장터의 냄새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화려하지 않은 잔잔함이 오히려 일상에 돌아갔을 때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깊게 기억에 남았다. 숨이 턱 막히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 문득 눈을 감으면 봉평 메밀밭의 하얀 풍경과 북적이는 시장통에서 아이들과 나눠 먹던 고소한 뻥튀기 맛이 떠오르곤 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장터의 꽃들을 바라보던 그 정지 화면 같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우리 가족에게 "그래도 올해 가을엔 또 평창 가야지" 하는 단단한 일상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듯했다.

3. [비판] "지방 관람객은 서럽다" 접근성에 발목 잡힌 평창의 아쉬운 현실

하지만 십수 년째 평창을 사랑하는 찐 팬이자 엄마의 시선으로, 평창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평창이 가진 이 멋진 자연과 문화 콘텐츠가 오직 '교통 접근성' 하나 때문에 빛이 바래고 있었다.

수도권 중심의 교통망, 지방러에겐 너무나 먼 당신 :
KTX가 다닌다고 하지만 지방에서 평창으로 바로 쏘는 노선이 없다 보니, 무조건 서울을 거쳐 가야 하는 기형적인 환승 구조였다. 양양공항 노선 폐쇄까지 겹치면서 수도권 외 지역의 관광객들은 울며 겨우 먹기로 편도 6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을 감수해야 했다. 평창이 진정한 글로벌 관광 도시로 거듭나려면 지방 거점 도시와의 직통 대중교통 인프라나 셔틀버스 연계 대책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마땅했다.

자가용 없이는 미라가 되는 극악의 현지 이동 난이도 :
평창은 땅덩어리가 엄청나게 넓었다. 봉평 메밀밭에서 이효석 문학관, 그리고 봉평 시장까지의 거리가 제법 되는데 현지 대중교통이나 시티투어 버스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장 주차장 인프라가 넓고 잘 정비된 점은 칭찬하지만, KTX 역 기반의 단기 카셰어링(렌터카) 서비스나 주요 거점을 잇는 셔틀버스가 훨씬 더 공격적으로 활성화되어야 운전대를 잡은 아빠들의 척추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찰나의 개화 시기, 실시간 정보 공유의 부재 :
메밀꽃은 개화 기간이 정말 짧아서 일주일만 타이밍을 잘못 맞춰도 듬성듬성 탈모 온 듯한 메밀밭을 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축제 측에서 공식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오늘 자 메밀밭 실시간 개화 상황'을 CCTV나 고화질 사진으로 매일 꼼꼼하게 공유해 주면 좋겠는데, 여전히 대략적인 축제 기간만 공지하다 보니 멀리서 연차 쓰고 온 관람객들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방문해야 하는 리스크가 존재했다.

봉평 메밀밭&시장 투어 최종 요약 (엄마의 리얼 팁)

최고의 순간 : 12시간의 대장정 끝에 봉평 메밀밭 앞에 서서 메밀꽃을 감상한 뒤, 정겨운 오일장에서 가을꽃과 현미 같은 메밀차를 양손 가득 사 들고 가족들과 웃었던 순간.

방문객을 위한 현실 팁 : 봉평 전통시장은 주차장이 넓은 편이라 차 대기 수월했다. 방문하기 전에 꼭 봉평 장날(2, 7일장)을 맞춰서 가라! 그냥 시장만 쓱 도는 것보다 꽃 구경,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백 배는 더했다. 볶은 메밀차는 차로 마셔도 좋지만 입 심심할 때 과자처럼 씹어 먹는 용도로 꼭 사 오길 추천한다.

한 줄 평 : 화려하진 않지만 인생에 가장 오래 남는 새하얀 비경과 입이 즐거운 먹거리가 가득한 가을 명당이지만, 지방에서 가기엔 뼈가 시릴 정도의 험난한 교통 인프라를 각오해야 하는 애증의 여행지다.

본 포스팅은 강원도 평창군이나 봉평 시장 식당들로부터 메밀전 한 조각 협찬받지 않고, 가을 메밀꽃과 시장 주전부리에 영혼을 저당 잡힌 아내의 등쌀에 밀려 왕복 12시간 독박 운전대를 잡은 남편 카드로 메밀국수부터 보쌈까지 다 긁고 온 100% 내돈내산 가을 가족 표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