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인스타 알고리즘이 하도 공주 영상을 밀어넣기에 "일본 교토 부럽지 않다던데, 설마?" 하며 반신반의했거든요. 남편은 차 막히는 거 딱 질색인 사람이라 "걷기만 해도 다 닿는 동네래"라고 살짝 과장해서 설득했고, 고딩 아들과 중딩 딸을 끌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게 떠난 공주는 이전 여행보다 훨씬 입체적인 동네였습니다.
보리차 대참사부터 무령왕릉까지, 네 식구의 우당탕탕 에피소드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공주 여행의 묘미는 관광 명소 그 자체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터지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에 있었습니다.
첫 출발은 백제싱싱자전거였습니다. 백제싱싱자전거란 공주시가 운영하는 공공자전거 시스템으로, 재민천 일대와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저비용 이동 수단입니다. 페달을 밟으며 재민천변을 따라 내려오다 100% 메밀 국수집에 들어간 게 첫 번째 실수였습니다. 주말이라 모르는 손님들과 합석까지 해야 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남편이 테이블 위 주전자를 들어 국수 그릇에 들이붓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그건 따뜻한 보리차였습니다.
딸이 "아빠 진짜 미쳤어?!" 하고 소리를 질렀고, 아들은 "공주식 티 막국수 아닌가요?" 하며 능청스럽게 받았습니다. 남편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보리차에 만 메밀국수를 꾸역꾸역 비웠고, 저는 배를 잡고 웃느라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습니다. 제 경험상 소도시 식당 테이블에 놓인 주전자는 절대 섣불리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이후 아들이 유난히 관심을 갖던 무령왕릉을 방문했습니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으로, 1971년 발굴 당시 도굴 피해 없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국내 고고학계에 큰 획을 그은 유적입니다. 특히 출토된 지석(誌石), 즉 무덤 주인의 신원과 사망 일시를 기록한 묘지석이 발견되어 삼국 시대 고분 중 피장자(被葬者)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복제 전시를 보는데, 역사에 크게 관심 없던 중딩 딸이 "이게 진짜 1500년 전 거야?"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군요. 그 표정 하나로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산성시장 안 광장순대로 넘어가는 길에서 두 번째 사건이 터졌습니다. 길을 헤매던 우리 네 식구에게 골목 어귀 아저씨가 거친 사투리로 "엠마! 어딜 가!" 하고 쏘아붙이셨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잔뜩 쫄아 제 등 뒤로 숨었고 저도 순간 가슴이 철렁했는데, 알고 보니 "순대집이 이 길 아니여, 저 쪽으로 가!" 하는 길 안내였습니다. 공주 시내 로컬 분위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츤데레(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정이 깊은 태도)'에 가장 가깝습니다. 사춘기 기세 등등하던 남매가 시장 아저씨 한 분에게 완전히 제압당한 장면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공주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산성: 백제 웅진 도읍기 왕성으로, 금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일품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5년 지정)에 포함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입니다.
- 무령왕릉: 출토 유물 4,600여 점이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왕릉과 박물관을 함께 보는 동선을 권합니다.
- 재민천변 카페 골목: 공주 감성 여행의 심장부로, 독립서점과 소품숍이 모여 있습니다.
- 광장순대(산성시장 내): 사골 육수가 찌르르하게 깊어, 뚜벅이 여행으로 지친 다리를 회복하기 딱 좋습니다.
- 알밤 모찌 떡집: 오후 5시 전에 반드시 방문해야 합니다. 저는 눈앞에서 문이 닫혀 아들과 함께 괴성을 질렀습니다.
인스타엔 감성 폭발이더니, 실제로 살펴보니 아쉬운 것들
공주의 낮 풍경은 진심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재민천변 카페에 앉아 풍경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 동안 멍을 때렸는데, 그 카페 안에 있던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 다들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맨날 유튜브 쇼츠만 보던 중딩 딸이 가방에서 슬그머니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 건, 이 여행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작품이 곳곳에 걸린 골목과 그 분위기가 아이들 마음속에도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아 오길 참 잘했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을 데리고 걸어 다닌 엄마의 시선으로 보면, 소셜 미디어가 과장하는 부분도 분명 있었습니다. "차 없이 걷기 딱 좋은 소도시"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써보니 이건 좀 다릅니다.
먼저 보행 접근성(Pedestrian Accessibility) 문제입니다. 보행 접근성이란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을 의미합니다. 공주 도심의 인도는 폭이 좁고 단차가 있는 구간이 많아, 자전거를 타던 아들이 턱에 걸려 몇 번이나 휘청거렸습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보행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 미만 소도시의 보행로 연속성 지수는 광역시 대비 평균 41%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공주도 그 범주 안에 있다는 걸 직접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다음은 야간 관광 콘텐츠의 부재입니다. 공주의 오후 5~6시는 가히 '일몰과 함께 셔터를 내리는 도시'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알밤 모찌 떡집 사건처럼, 낮 시간에 동선을 빡빡하게 짜지 않으면 줄줄이 닫힌 셔터와 마주합니다. 야간관광 콘텐츠란 해가 진 이후에도 여행객이 안전하고 즐겁게 체류할 수 있도록 조성된 야시장, 야간 조명 특화 거리, 야간 문화 프로그램 등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3년 국내 소도시 관광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소도시 여행객의 32.4%가 "저녁 시간 이후 즐길 콘텐츠 부재"를 불만족 1순위로 꼽았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실제로 경험해보니 그 수치가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로컬 서비스 마인드의 온도 차입니다. 시장 아저씨처럼 속정 깊은 분들이 분명 계셨지만, 사춘기 아이들 입장에서 몇몇 상인의 무표정한 응대는 "엄마, 우리 뭐 잘못했어?" 라는 질문을 만들어냈습니다. 관광 도시로서 로컬 정체성(Local Identity), 즉 지역 고유의 문화와 분위기를 보존하는 것과 외지인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서비스 친화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은, 어느 소도시 여행지에서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보였습니다.
공주 뚜벅이 여행,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소도시 특유의 여유로움이 최고"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반면, "인프라가 부족해서 불편하다"는 시각도 충분히 타당합니다. 저는 두 의견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루 종일 몸으로 부딪쳐 보고 나서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재민천 골목길 카페에서 풍경 소리를 들으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한 중딩 딸의 뒷모습은, 어떤 화려한 테마파크에서도 만들어낼 수 없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것 하나로 공주는 제게 다시 올 이유를 충분히 남겼습니다. 떠나기 전, 알밤 모찌는 반드시 낮 시간 동선에 넣어두세요. 저처럼 셔터 앞에서 괴성을 지르고 싶지 않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