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에 만난 인생 여행, 국립남도국악원 1박 2일
진도 여행을 떠올릴 때 쏠비치만큼이나 내 가슴 한구석을 뜨겁고 뭉클하게 채우고 있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바로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보냈던 하룻밤이다.
예전에 남도국악원에서 운영하는 1박 2일 가족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신청해서 다녀온 적이 있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아늑하게 잘 갖춰져 있어서 일차로 놀랐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밀도와 정성에 이차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국악원에서 준비해 준 대형 버스를 타고 다른 참가 가족들과 다 같이 어울려 진도 구석구석을 누비던 진도 투어는 참 색다르고 정겨운 경험이었다. 가이드분의 구수한 설명을 들으며 몰랐던 진도의 숨은 이야기들을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사람들과 어우러져 지역의 숨결을 느끼는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선물 같았다.
잊을 수 없는 그 밤, 손에 손을 잡고 뛴 강강술래
하지만 그 모든 일정 중에서도 우리 식구 가슴속에 가장 강력하고 깊은 잔상을 남긴 건 단연 저녁 시간에 펼쳐졌던 '강강술래' 체험이었다.
사방에 어둠이 살포시 깔리고 시원한 밤바람이 스쳐 지나가던 국악원의 마당. 아이들과 어른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동그랗게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고쳐잡았다. 처음에 조금 어색해하던 아이들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앞서 나가는 소리꾼 선생님의 선소리에 맞춰, 우리 모두는 목청을 높여 소리를 받았다.
"강강술래~!"
소리에 맞춰 발을 굴리고, 손을 잡은 채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뛰기 시작했다. 뛰다가 넘어가고, 다시 꼬였던 원을 풀어내며 달리는 동안, 낮에 처음 만나 어색했던 다른 가족들과의 벽은 순식간에 녹아내려 버렸다. 서늘했던 밤공기는 이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로 따스하게 달아올랐고, 현장은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깔깔거림과 어른들의 정겨운 추임새로 가득 찼다.
아이가 신나서 땀에 흠뻑 젖은 이마를 훔치면서도,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놓지 않고 뛰던 그 순간의 감촉. 그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진짜 살아있는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평생을 전통 소리와 장단에 바쳐온 진짜 국악 고수(鼓手) 선생님들께 직접 강강술래의 기본을 배우고 추임새와 장단을 배워보는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고수 선생님이 쿵덕쿵 울려대는 묵직한 북소리에 맞춰 어깨를 덩실대고 창을 따라 부르던 그 밤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 어떤 교과서나 학원 수업보다 훨씬 깊고 진한 문화적 울림이 되어주었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반가운 '국악나들이'의 온기
이 강강술래의 밤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혹시 요즘도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나 궁금한 마음에 소식을 찾아본 적이 있다. 반갑게도 국립남도국악원에서는 여전히 가족들을 위한 멋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최근에는 *<보배섬 국악나들이 "여름 특별문화체험"> 이라는 이름으로 2박 3일 동안 가족 단위 참가를 받아 뜻깊은 행사를 진행하곤 한다.
우리가 감동받았던 강강술래 배우기 같은 국악 체험은 기본이고, 국악원 명품 상설공연 관람,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 선생의 숨결이 담긴 운림산방 탐방, 거기에 천연 염색 체험과 갯벌 체험까지 다채롭게 어우러진 알찬 일정이다. 혹시 아이들과 함께 진도로 떠날 계획이 있거나, 뻔한 관광지 순례 대신 진짜 기억에 남는 문화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부모님이 계신다면 이 국립남도국악원 프로그램만큼은 꼭 눈여겨보고 신청해 보시라고 사심을 담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내가 가슴으로 기억하는 진도
이번 진도 여행은 여러 곳을 바쁘게 스쳐 지나가지 않았기에 오히려 가슴 깊이 남았다. 쏠비치 안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걷고, 쉬고, 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휴식. 그리고 국립남도국악원의 밤하늘 아래서 처음 본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땀 흘리며 강강술래를 뛰어놀던 그 뜨거웠던 온기.
진도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지친 사람을 다정하게 안아주고, 잊고 있던 정을 다시 느끼게 해주고,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묘한 끌림을 가진 고마운 땅이었다.
지금도 일상에 치여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진도의 바닷바람과 그 밤의 강강술래 소리를 떠올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가슴속에서 다정한 고백 하나가 흘러나온다.
“아, 그때 참 잘 쉬고, 참 신나게 잘 놀다 왔다.”
언젠가 다시 진도를 향해 차를 몰 수 있다면, 그때는 이번보다 훨씬 더 천천히, 그리고 조금 더 오래 머물며 그 따뜻한 온기를 음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