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는 강원도 여행을 계획할 때 정선과 평창을 처음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속초, 강릉 같은 바다 쪽에 먼저 손이 갔거든요. 그런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과 공기, 그리고 그 안에서 먹은 밥 한 그릇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5월에서 6월 사이, 지금이 바로 이 지역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타이밍입니다.
탁 트인 고산 풍경, 몸으로 느껴야 압니다
정선·평창을 다녀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보다 실제가 더 낫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청옥산 육백마지기에 올라가보고 나서야 그 말을 이해했습니다.
육백마지기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위 평탄면(高位平坦面)에 해당합니다. 고위 평탄면이란 높은 고도에 위치하면서도 지형이 평탄하게 펼쳐진 지역을 뜻하는데, 한반도에서도 드문 지형입니다. 그 위에 올라서면 언덕과 하늘이 맞닿은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지는데, 바람이 꽤 강하게 불어서 서 있기만 해도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은 계속 직진하라고 하는데, 도로는 점점 좁아지고 구불구불해졌습니다. 산길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긴장될 수 있는 구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비 온 뒤라면 더 조심해야 하고, 안개가 끼는 날에는 가시거리가 확 줄어들기도 합니다. 예쁜 사진만 보고 무작정 올라갔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도로 상태는 미리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평창의 하늘목장과 대관령 삼양목장도 비슷한 감동이 있습니다. 목장 자체가 전망대 역할을 하는데, 트랙터 마차를 타고 정상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소도 보고, 탁 트인 하늘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선의 민둥산은 조금 다른 지형을 보여주는데, 돌리네(Doline)라는 특이한 지형이 있습니다. 돌리네란 석회암 지대에서 지하 용해나 지반 침하로 인해 생긴 움푹 파인 분지 형태의 지형으로,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어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공기가 다른 숲길, 걸으면서 느끼는 것들
산 풍경을 보는 것과 숲 안을 직접 걷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정선·평창에는 걷기 좋은 공간이 여러 곳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이 지역 여행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항재는 국내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로, 해발고도(海拔高度) 1,330m에 위치합니다. 해발고도란 평균 해수면을 기준으로 측정한 지점의 높이를 의미하는데, 이 높이에서 걷는 숲길의 공기는 평지와 확연히 다릅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공기가 맛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계곡 소리를 들으며 전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머릿속이 자연스럽게 비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부모님과 함께 왔다면 이 코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가 됩니다. 걷고 난 뒤 숲 옆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발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천년 주목 숲길은 데크가 잘 깔려 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총 2.5km로 부담 없는 길이입니다. 산림욕(山林浴)의 효과에 대해서는 산림청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피톤치드 농도가 높은 침엽수림에서의 걷기가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겁나지만 끝나면 뿌듯한 액티비티들
여행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게 뭔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편안했던 순간보다 살짝 긴장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해낸 순간이 더 오래 남더라고요. 정선·평창의 액티비티가 딱 그런 경험을 만들어줍니다.
정선 병방치 집와이어는 아시아 최고 속도 수준의 짚와이어(Zip Wire) 코스입니다. 짚와이어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활강 레저 스포츠로, 속도와 고도감이 핵심 매력입니다. 제가 대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려가는 걸 보는데, 처음엔 "재밌겠다" 싶다가도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뿌듯합니다. 안 했으면 더 아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경험입니다.
백룡동굴 탐험은 단순한 동굴 관람과 다릅니다. 점프수트와 헬멧, 장갑까지 착용하고 좁은 동굴을 포복으로 이동하며 탐험하는 방식입니다. 어디 가서 "평범하지 않은 여행 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가족 단위라면 선택지를 조금 달리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 기준으로 나눠서 생각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 성인·스릴 선호: 병방치 집와이어, 알펜시아 알파인코스터
- 가족·어린이 동반: 레일바이크, 하늘목장 트랙터 마차
- 고소공포증 있는 경우: 백룡동굴 탐험, 레일바이크 권장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어린 아이와 함께라면 집와이어나 스카이워크는 현장에서 겁이 나서 포기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전에 난이도와 대기 시간을 충분히 확인하고 가시길 권합니다.
많이 걷고 나서 먹어야 더 맛있는 밥
정선·평창에서 먹은 음식이 특별했던 이유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많이 걷고, 바람 맞고, 조금 긴장까지 하고 나서 먹은 밥이었기 때문입니다. 음식 자체가 화려하진 않지만, 그 상황과 맞물리면서 맛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 지역의 대표 음식인 곤드레밥은 곤드레나물(고려엉겅퀴)을 밥에 얹어 지은 음식입니다. 곤드레나물은 4월에서 6월 사이 제철을 맞는데, 지금 이 시기에 정선·평창을 방문하면 가장 신선한 곤드레를 맛볼 수 있습니다. 돌솥에 담겨 나온 곤드레밥에 간장 양념을 올려 비벼 먹고, 마지막에 돌에 물을 부어 누룽지로 마무리하는 과정이 번거롭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콧등치기국수는 면치기를 하면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감자 옹심이와 메밀면이 함께 들어간 정선 아리랑시장의 대표 음식인데, 소박하지만 먹고 나서 속이 편합니다. 산나물 중심의 정선·평창 음식은 일반적으로 나트륨 함량이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편으로, 농촌진흥청 식품성분표에서도 산나물류의 영양 가치가 확인됩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정선·평창 여행은 풍경만 보고 오는 여행이 아닙니다. 산길에서 긴장하고, 바람 속에서 웃고, 체험 앞에서 망설이다가 해내고, 따뜻한 밥으로 마무리하는 여행입니다. 빡빡하게 일정을 잡기보다 한두 곳을 천천히 즐기는 방식이 이 지역과 잘 맞습니다. 5월에서 6월 사이,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한번 다녀오시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