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역사와 유물의 깊이에 한껏 매료되었던 우리 가족. 그 진한 여운을 품고 다음날 우리가 향한 곳은 바로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Leeum Museum of Art)'이었다.
사실 리움미술관은 예전부터 참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아 매번 뒤로 미루어두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이번 서울·경기 여행 일정에 드디어 넣게 되어 방문 전부터 기대가 어마어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진작 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기대 그 이상을 넘어 완벽함과 전율을 선사해 준 공간이었다. 1,600자 이상의 알찬 솔직 후기로 그 생생했던 감동을 풀어본다.
1. 무료 관람으로도 완벽했던 압도적 유물 컬렉션과 건축미
이른 아침 한남동 언덕길을 올라 리움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건축물 자체가 주는 위용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라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 3인이 각자의 개성을 담아 설계한 공간답게,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나 계단, 창으로 들어오는 빛 하나까지도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번 방문에서 기획전 대신 상설전(무료 관람) 위주로 둘러보았는데, 무료 관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시의 양과 질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고미술관(M1)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정교하기 짝이 없는 삼국시대 금동관과 금동불상, 단아하고 우아한 빛깔의 고려청자, 담백하고 기품 있는 조선백자, 그리고 교과서에서나 보던 거장들의 고서화까지 국보와 보물급 유물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전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나라 국가 소유의 대표 유물들을 둘러보며 감탄했는데, 바로 다음날 개인 재단 소장품이 이 정도 규모와 수준이라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니 또 다른 차원의 전율이 밀려왔다. 굳이 유료 기획전시를 추가하지 않더라도, 상설전 전시장 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이 훌륭하게 채워질 만큼 볼거리가 풍성했다. 나중에 다른 블로그 후기들을 찾아보니 "리움은 무료 상설전 사전 예약만 성공해도 서울 여행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직접 가보니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200% 공감할 수 있었다.
2. 도슨트가 필요 없는 최첨단 디지털 가이드와 로비의 감각적 영상 작품
리움미술관에서 관람하며 가장 감탄했던 또 하나의 부분은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손색없는 관람 안내 시스템이었다. 리움에서는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최첨단 디지털 가이드(오디오 가이드) 단말기와 이어폰을 대여해 준다.
이 가이드 시스템이 그야말로 대단했다. 단말기를 목에 걸고 전시장을 걷다가 특정 작품 앞에 멈춰 서면, 센서가 관람객의 위치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해당 작품에 대한 고화질 이미지와 상세한 음성 해설을 화면으로 바로 띄워주었다. 덕분에 시간에 맞춰 도슨트 투어 무리를 졸졸 따라다닐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원하는 만큼 한참을 서서 깊이 있게 해설을 듣고, 나만의 속도로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어 관람의 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전시관 관람을 다 마치고 로비로 내려왔을 때 공간 전체를 채우고 있던 대형 영상 작품도 압권이었다. 높고 웅장한 로비 벽면에 펼쳐지는 감각적인 현대 미술 영상은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고미술관에서 느꼈던 고즈넉하고 예스러운 멋과 로비에서 접한 첨단 현대 미술의 선열함이 한 공간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어, 가만히 서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감상했다.
3. "이건 모두 돈의 힘인가?" 감탄과 부러움이 교차했던 하루
관람을 이어가는 내내 머릿속을 스친 가장 솔직한 생각은 "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본과 돈의 힘인가?" 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무궁무진한 보물급 유물들을 한 개인이나 재단이 이렇게 대규모로 수집할 수 있었다는 점,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을 모아 이런 멋진 공간을 지어 올렸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관람객에게 최첨단 디지털 가이드와 최상의 전시 환경을 무료로 제공하며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귀한 유물과 예술품을 알아보는 깊은 안목과 식견,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 낸 막강한 재력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하루였다.
비록 거대한 자본으로 구축된 민간 미술관이지만, 이 훌륭한 문화유산들을 개인이 독점하지 않고 잘 보존하여 일반 대중에게 수준 높은 환경으로 공개해 준다는 점에서는 고마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대기업의 문화적 기여와 집념을 눈으로 직접 체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4. 한남동 골목 산책과 "커피가 8천 원?!" 남편의 유쾌한 멘붕
리움미술관에서의 만족스러운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박물관 주변의 한남동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전날 갔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주변이나 서울의 다른 핫플레이스들과는 또 전혀 다른, 한남동 특유의 세련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언덕길을 따라 감각적인 디자이너 쇼룸과 고급 빌라, 고즈넉하면서도 멋스러운 카페들이 어우러져 있어 산책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 분위기 좋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메뉴판을 유심히 살피던 남편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소곤거렸다.
"여보, 무슨 커피 한 잔에 8천 원이나 해?!"
지방이나 동네 카페의 일반적인 물가에 익숙했던 남편에게 한남동 카페의 가격표는 제법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옆에서 웃으며 *"요즘 한남동이나 서울 핫플 카페 오면 이 정도는 기본이야~ 1만 원 넘는 곳도 수두룩해!"*라고 말해주었더니, 남편은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어이없어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의 그 순박하고 솔직한 반응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한참을 배를 잡고 웃으며 유쾌한 티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8천 원짜리 커피였지만, 한남동의 감성을 느끼며 여행 중 여유를 누리기엔 충분히 가치 있는 소비였다.
3탄 총평
좋았던 점: 무료 상설전만으로도 완벽한 고미술 및 현대미술 컬렉션, 작품 몰입도를 극대화해 준 최첨단 디지털 가이드, 거장들의 아름다운 건축물, 한남동 특유의 이국적이고 세련된 거리 분위기.
아쉬운 점: 엄청난 유물 양과 높은 언덕길로 인한 체력 소모, 한남동 인근의 다소 높은 카페 및 디저트 물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리움미술관 방문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문화적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전날의 국립중앙박물관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 가족의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준 하루였다. 훌륭한 유물 감상부터 한남동 산책, 그리고 남편과의 유쾌한 8천 원 커피 에피소드까지,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쌓았다.
미술관 투어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제 다음 여행지로 이동해 볼 차례다. 다음 4탄에서는 쇼핑과 인테리어의 천국,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한 '이케아(IKEA)' 방문기로 돌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