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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빵집 여행 (오픈런, 빵지순례, 동선)

by 카타리 2026. 6. 12.

메트르아띠정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부산에 가면 해운대나 광안리, 아니면 돼지국밥이나 밀면부터 찾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이상하게 빵집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숙소 주변을 검색하다 보니 유명한 빵집들이 꽤 많았고, 후기를 읽다 보니 "부산에서 빵만 먹어도 하루가 꽉 차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빵지순례가 시작됐습니다.

오픈런과 빵지순례, 낭만인가 체력전인가

빵지순례란 빵집을 목적지 삼아 여러 곳을 순서대로 방문하는 여행 방식을 말합니다. 카페 투어나 맛집 투어처럼 특정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동선을 짜는 것인데,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저도 처음엔 가볍게 두세 곳만 가자고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서면역과 부전역 사이에 있는 희와제과였습니다. 빵이 오전 10시에 나온다는 걸 모르고 오전 7시 오픈에 맞춰 갔다가 허탕을 쳤습니다. 오픈런(open run)이란 가게 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달려가는 행동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오픈 시간과 빵 출시 시간이 다르다는 함정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일찍 일어나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나면 그 피로감이 꽤 큽니다. 결국 9시 40분쯤 다시 돌아가 크림치즈빵과 팥빵을 포함해 총 일곱 개를 샀습니다. 처음엔 두세 개만 살 생각이었는데, 기다린 게 아까워서 손이 자꾸 갔습니다. 여행지에서는 판단이 느슨해집니다.

매장 안에 앉아서 먹을 공간이 없어 근처 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테이크아웃 중심의 빵집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날씨가 좋아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비가 왔거나 추운 날이었다면 꽤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아침 찬 공기 속에서 봉지를 열었고, 크림치즈빵에서 산미 있는 크림 치즈가 꽉 차게 들어 있는 걸 확인했을 때 기다린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팥빵은 화려한 맛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제과점에서 기대하는 단정한 단맛이 있었습니다. 빵과 팥이 따로 놀지 않았고, 너무 달지도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간 쿠루미과자점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일본에서 제과를 공부한 셰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아르티장(artisan) 방식으로 만든 빵을 선보이는 곳입니다. 아르티장이란 대량 생산 방식이 아닌 장인이 소규모로 직접 손으로 만드는 방식을 뜻하며, 재료 선별과 공정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직원분의 인사가 따뜻했습니다. 빵집은 서비스 퀄리티를 놓치기 쉬운 업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곳에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낯선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환영받는 느낌을 받으면, 그 도시 전체가 조금 따뜻해집니다.

소금빵은 바닥이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고 위에 소금 결정이 씹혔습니다. 하루 종일 단 빵만 먹으면 금방 질리는데, 이런 짭짤한 빵이 중간에 끼어들면 입맛이 다시 살아납니다. 시즌 한정 메뉴인 반빙수는 쑥으로 만든 얼음 알갱이 위에 견과류와 밤, 그리고 위에 부드러운 밤 크림이 올라간 구성이었는데, 따로 한 그릇 퍼먹고 싶을 만큼 밤 크림이 맛있었습니다.

부산 빵지순례 핵심 빵집 정리:

  • 희와제과: 서면역·부전역 사이, 크림치즈빵·팥빵 추천, 빵 출시 시간 오전 10시 확인 필수
  • 쿠루미과자점: 일본식 아르티장 빵집, 소금빵·반빙수(시즌 한정) 추천, 매장 내 착석 가능
  • 보느파티쓰리: 프랑스 제과 전문, 클라프티·금목서 추천, 셰프 추천 메뉴 물어볼 것
  • 밀창고: 해운대 해리단길, 명란 소금빵·버섯가지 샌드위치·두바이 소금빵 추천
  • 메트르아티정: 남천동, 비롱 밀가루 바게트·호두 크루아상 추천, 아침 오픈 시간 공략 필수

동선과 현실, 빵집 여행의 진짜 비용

부산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서면, 해운대, 남천동을 하루에 모두 다니면 이동 시간이 꽤 걸립니다. 해운대 해리단길에 있는 밀창고는 삼남매가 운영하는 곳으로, 첫째는 호주에서 커피를, 둘째는 프랑스에서 제빵을, 셋째는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커피 추출 대회인 코만탄테 챔피언십에서 1등을 한 이력이 있는 첫째 사장님 덕분에,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이 와도 "여기 커피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처음엔 명란 소금빵을 한 개만 살 생각이었는데, 버섯가지 바게트 샌드위치를 한 입 먹었을 때 기대가 한번 더 무너졌습니다. 버섯과 가지만 들어간 채소 샌드위치인데, 먹자마자 육즙이 많이 나와서 고기를 먹는 건가 싶었습니다. 두바이 소금빵은 카다이프(kadayif)라는 실처럼 뽑은 밀가루 반죽에 피스타치오와 초코를 넣은 구성입니다. 카다이프란 중동과 지중해 지역에서 사용하는 얇은 실 모양의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특징입니다. 뻑뻑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피스타치오 크림이 뒤쪽에 들어 있어 조화가 좋았습니다.

남천동의 메트르아티정은 제게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습니다. 프랑스 출신 셰프가 운영하며 프랑스 바게트 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한 이력이 있는 곳입니다. 이 빵집에서 사용하는 비롱(Viron)이란 프랑스의 고급 제분 브랜드로, 밀가루 자체의 향이 강하고 품질이 뛰어나 바게트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유리합니다. 수입이 까다로운 재료인 만큼 쓰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바게트를 아침에 갓 구웠을 때 겉은 얇고 파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하고 밀 향이 올라오는 느낌은 프랑스에서 먹었던 바게트와 거의 비등한 수준이었습니다.

국내 식품 관련 소비 트렌드를 보면, 베이커리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입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베이커리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5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그만큼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올라갔고, 지역 기반의 아르티장 빵집들이 입지를 키워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동선 면에서도 짚어둘 게 있습니다. 여행 중 빵집을 많이 돌려면 이동과 대기 시간을 감안해야 합니다. 부산관광공사에 따르면 부산 주요 관광지 간 이동 시간은 평균 30분 내외로, 빵집 여러 곳을 묶어 다니려면 동선을 미리 지역별로 묶어두는 것이 현실적입니다(출처: 부산관광공사). 서면·전포 권역, 해운대·해리단길 권역, 남천동 권역으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다니는 것이 무리 없는 방식입니다.

빵지순례는 낭만이기도 하지만 동선이 무너지면 피로가 쌓이는 체력전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루에 다섯 곳을 돌고 나서 오후에는 입맛이 무뎌졌습니다. 빵은 가볍게 먹는 음식처럼 보이지만, 버터와 단맛이 쌓이면 뜨거운 국물이 간절해집니다. 결국 저녁은 밀락동의 수변최고돼지국밥으로 마무리했는데,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그제야 하루가 완성된 느낌이었습니다. 빵집을 찾아다닌 하루였지만 끝은 국밥이었다는 게 조금 웃기면서도, 그게 부산다웠습니다.

부산 빵지순례를 생각하신다면, 하루에 너무 많은 곳을 넣기보다 두세 곳을 천천히 도는 것을 권합니다. 빵 하나를 먹기 위해 낯선 골목을 걷고, 직원과 짧게 대화하고, 벤치에 앉아 봉지를 열어 먹는 그 순간들이 전부 여행입니다. 어느 빵이 제일 맛있었는지보다, 그 빵을 어디서 어떻게 먹었는지가 더 오래 남습니다. 부산을 바다와 국밥으로만 기억해왔다면, 이번에는 빵집 골목도 한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o6F6yuF1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