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이 되면 꽃 사진 하나에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벚꽃이 지고 나면 봄이 끝난 것 같다가도, SNS에 장미 사진이 올라오면 이미 검색창에 손이 가 있습니다. 저도 5년 넘게 해마다 그 패턴을 반복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꽃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언제, 어떻게 가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목향장미와 라벤더, 일반적인 기대와 실제 사이
목향장미(Rosa banksiae)는 덩굴성 장미의 일종으로, 쉽게 말해 담장이나 건물 외벽을 타고 흘러내리듯 피는 장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미 하면 큼직한 꽃송이를 떠올리는데, 목향장미는 그보다 훨씬 작은 꽃이 수십 개씩 모여 마치 꽃폭포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김해 장유의 카페 휘계는 이 목향장미 명소로 알려진 곳으로, 저도 사진으로 먼저 보고 "그냥 예쁜 카페겠지" 하고 기대를 낮췄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상상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목향장미의 가장 큰 특징은 향(fragrance)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미는 눈으로 보는 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목향장미는 먼저 코로 기억되는 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나는데, 저도 그 앞에서 몇 번이나 코를 가까이 댔을 것 같습니다. "이게 진짜 향 좋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꽃입니다.
다만 이런 카페형 꽃명소에는 늘 눈치싸움이 따라옵니다. 공간이 넓지 않은 곳에 사람이 몰리면, 꽃 앞에서 사진을 기다리는 시간이 꽃을 실제로 보는 시간보다 길어집니다. 저는 그 상황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라벤더(Lavandula)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허브 식물로, 쉽게 말해 보라빛 꽃과 진한 향으로 유럽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꽃입니다. 양산 동면의 라벤더 명소는 유러풍 테라스 건물이 언덕에 자리 잡은 모습부터가 이국적이라 많은 분들이 "여기가 국내 맞아?"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라벤더 명소는 보기만 예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그 생각이 절반쯤은 맞고 절반쯤은 틀렸다고 봅니다.
허브 향과 커피 향이 동시에 나는 공간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됩니다. 문제는 개화 시기(flowering season)입니다. 여기서 개화 시기란 꽃이 만개하는 특정 기간을 말하는데, 라벤더는 이 시기가 비교적 짧고 날씨와 기온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시간 후기를 찾지 않고 갔다가 듬성듬성한 밭만 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출발 전에 최근 방문자의 후기를 꼭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제 지세포성과 밀양 위양지, 꽃보다 풍경이 기억에 남는 곳
거제 지세포성 꽃동산은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 금계국(Coreopsis drummondii)이 노랗게 피어오를 때가 절정입니다. 금계국이란 국화과에 속하는 야생화로, 바람에 흔들리는 작고 선명한 노란 꽃이 들판을 가득 채우는 모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거제 바다가 뒤로 펼쳐지면 풍경이 평범한 꽃밭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바다 옆 꽃밭이면 배경이 예쁠 거라고 기대하는데, 실제로 가보면 바람이 변수가 됩니다. 저는 바다 근처 꽃밭에서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눈을 제대로 못 뜬 채로 사진이 찍힌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예쁘게 연출한 사진보다 그날 바람이 얼마나 셌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오히려 더 재미있습니다. 부산에서 한 시간이면 닿는 거리니 당일치기로도 충분합니다.
밀양 위양지는 조금 결이 다른 곳입니다. 이팝나무(Chionanthus retusus)는 하얀 꽃잎이 쌀밥처럼 피어난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만개하면 흰 눈이 쌓인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위양지의 핵심은 수면반영(水面反映)입니다. 수면반영이란 호수나 연못에 주변 풍경이 거울처럼 비치는 현상을 말하는데, 완재정과 이팝나무가 수면에 함께 비치는 장면은 화려하다기보다 조용하고 잔잔합니다.
저는 이런 곳에서 빠르게 보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아쉬운 여행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못가를 천천히 걷다가 바람이 불 때 물 위로 흔들리는 반영을 보는 시간이 실은 사진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꽃구경을 하러 갔지만, 사실은 잠시 마음을 내려놓으러 가는 곳에 더 가깝습니다.
5월의 부산 근교 꽃명소를 선택할 때 실제로 고려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목향장미 카페는 오전 이른 시간대가 사람이 적고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 라벤더 명소는 출발 전 최근 1주일 이내 후기로 개화 상황을 반드시 확인하세요.
- 거제 지세포성은 바람이 강하므로 머리끈과 얇은 겉옷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 밀양 위양지는 해 질 녘보다 오전이 수면반영이 더 선명하게 나옵니다.
-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은 규모가 크므로 그늘막과 물을 준비하면 훨씬 편합니다.
해운대수목원 장미원, 5월 꽃여행의 마지막 장면
해운대수목원 장미원은 5월 꽃여행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에 위치한 이곳에는 132종, 35,000주 이상의 장미가 심어져 있습니다. 장미의 색은 진하고 향은 강해서 봄이 완전히 무르익은 느낌을 줍니다. 5월이면 장미가 폭발하듯 만개하는 시기로, 하루에 몇 만 명이 방문하는 날도 있습니다.
품종다양성(cultivar diversity)이 높다는 점도 이곳의 특징입니다. 품종다양성이란 한 공간에 얼마나 다양한 품종이 함께 심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132종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은 색과 형태와 향이 서로 다른 장미를 차례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런 수목원형 정원에서 특히 좋아하는 점이, 단순히 예쁜 꽃밭이 아니라 식물 정보 자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곳도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가면 생각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저는 한 장 더 찍고 싶고, 같이 간 사람은 이미 카페에 앉고 싶어 합니다. 처음에는 그게 아쉽지만, 집에 와서 그날을 떠올리면 그런 실랑이까지 여행의 일부로 남습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공립 수목원과 정원의 방문객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5월 봄 시즌에 집중됩니다(출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해운대수목원처럼 도심 근처에 위치한 공공 정원은 별도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지만, 그만큼 혼잡도도 올라갑니다.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자료에 따르면 봄철 야외 방문지의 이용 집중 현상은 주말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납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5월 꽃여행지를 고를 때 저는 요즘 "제일 예쁜 곳"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곳"을 더 따집니다. 꽃이 조금 덜 피었더라도 주차가 편하고 그늘이 있고 함께 간 사람이 지치지 않으면 그날은 좋은 여행으로 기억됩니다. 반대로 꽃이 아무리 예뻐도 주차장에서 30분을 허비하고 그늘 한 점 없는 꽃밭을 걷고 나면 감상은 짧아집니다. 한 곳을 정해서 천천히 머무는 하루가, 다섯 곳을 빠르게 돌고 온 하루보다 더 오래 남습니다.
참고: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pcVacfCzMsrwGeQDBkNx2FTOmH4BIGp50y_rle6KrhQ/edit?gid=0#gi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