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은 나에게 "어디 한번 작정하고 가볼까?" 하고 결심해서 떠나는 도시가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스르르 떠오르는 곳이다. "아, 그때 거기서 먹었던 거 참 괜찮았는데…" 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어느새 차 키를 쥐고 군산으로 향하게 된다.
몇 년 동안 그렇게 몇 번을 다녀오다 보니, 이제는 군산에 도착해도 "어디를 먼저 가야 하지?" 같은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집처럼 익숙하고 검증된 나만의 코스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되는 입이 즐겁고 눈이 즐거운 여행, 그 첫 번째 이야기다.
1. 군산의 시작과 끝, 본관에서만 맛보는 이성당의 쌀빵
군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도장 깨기를 하듯 들르는 곳은 단연 '이성당'이다. 뒤이어 기다리는 다른 일정이 조금 밀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성당만큼은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곳은 갈 때마다 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크게 힘들거나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먼 길을 왔으니까 무조건 먹고 가야지" 하는 설렘과 기대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성당에 갈 때 초보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팁이 하나 있다. 단팥빵과 야채빵은 반드시 '본관'에서 줄을 서서 사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 본관과 별관이 나뉘어 있어서 잠시 헷갈려 헤맸던 기억이 있다.
이성당 빵은 신기하게도 몇 개를 먹어도 속이 거부감 없이 아주 편안하다. 쌀가루를 사용해 만들어서 그런지 밀가루 특유의 텁텁함이나 부대낌이 덜하다. 특히 우리 친정 어머니가 이 집 빵을 유별나게 좋아하신다. 집에서 군산 이야기를 꺼낼 때면 어머니는 거의 빠지지 않고 "거기 빵 한 번 맛보고 나니까 계속 잔상이 남아 생각난다"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신다. 그래서 군산에 직접 가지 못할 때면 가끔 택배로 한 상자 크게 주문해 보내드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에 내 마음까지 뿌듯해진다.
2. 8월의 크리스마스 감성 그대로, 초원사진관에서의 추억 한 컷
이성당에서 빵 쇼핑을 마치고 골목을 따라 조금만 걸어 들어오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을 만날 수 있다. 군산에 올 때마다 이곳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필수 포토존이다.
세월이 훌쩍 흘렀음에도 영화 속 한석규와 심은하의 따뜻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마당에 세워진 옛날 다림이 소형차와 오래된 사진기 소품들 덕분에 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진관 앞에서 가족들과 연신 셔터를 누르며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 여기서 찍은 사진은 먼 훗날 군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갈 레트로 감성 가득한 가족의 보물이 되었다.
3. 해산물의 묵직함! 그냥 지나치면 서운한 군산 짬뽕
사진관에서 추억을 담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짬뽕'집이다. 전국에 짬뽕 맛집이 많다지만, 군산에서 수차례 짬뽕을 사 먹으며 느낀 점은 국물의 결이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싱싱한 해산물이 아낌없이 듬뿍 들어가서 그런지, 국물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칼칼하고 시원한 감칠맛이 입안 가득 감돌았다. 처음 군산에 왔을 때는 "짬뽕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별다를 게 있겠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 그릇 비우고 나서는 그 고정관념이 완벽히 깨졌다. 그래서 이제는 군산 여행표 공식 코스처럼 짬뽕집을 넣게 된다.
단, 진한 해물 국물에 대한 호불호는 살짝 갈릴 수 있다. 함께 간 우리 남편은 나와 입맛과 취향이 조금 달라서 리액션이 밋밋했던 걸 보면, 이건 아주 개인적인 취향 차이라고 감안해 두는 것이 좋다.
4. 반 공기 더 밥을 말게 만드는 시원함, 한일옥 무국
칼칼한 짬뽕으로 입안을 채우고 나면, 다음으로 절로 생각나는 메뉴가 바로 초원사진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한일옥의 소고기 무국'이다. 솔직히 처음에 이 집을 갔을 때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집에서도 흔히 끓여 먹는 무국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하는 의구심이 더 컸다.
하지만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한 입 삼키는 순간, 완벽한 반전이 일어났다. 기름기 없이 투명하고 맑은 국물이 어쩜 이렇게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며 속이 뻥 뚫리듯 시원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짬뽕처럼 강렬한 맛으로 입을 사로잡는 게 아니라, 여행 내내 지친 속을 편안하게 다독이고 정리해 주는 느낌이었다.
특히 여행 일정을 마무리할 때쯤 먹어주면 그날 먹었던 모든 음식의 기운이 싹 정리되는 완벽한 마침표가 되어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짬뽕을 먼저 먹고 무국으로 속을 풀어주는 흐름'을 무척이나 애정한다. 이날은 평소 밥 한 공기도 다 못 먹던 내가 속이 너무 편해진 나머지 국물에 밥을 말아 반 공기나 더 비워내는 기염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