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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궁전제과 (53년 전통, 나비파이, 빵지순례)

by 카타리 2026. 6. 14.

궁전제과 나비파이

솔직히 말하면, 저는 광주에서 빵집이 그렇게 대단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걸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검색창에 "광주 빵집 추천"을 쳐서 나온 결과를 따라갔을 뿐인데, 평일 낮에 계산대 앞에 그 줄이 있을 줄은 예상 못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에서 내려온 셰프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도시"라는 말이 있을 만큼, 광주는 식품 소비자 눈높이가 유독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53년을 살아남은 빵집, 그 배경

궁전제과는 1973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올해로 53년째입니다. 할머니가 창업해서 아버지를 거쳐 지금은 3대째 운영 중인 가게입니다. 처음에는 1층 세입자로 시작해서, 장사가 잘 되자 한 층씩 매입해 지금은 건물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셰프 오세득이 "50년 했다는 건 요리사에게 건물주랑 같은 말"이라고 했던 게 농담만은 아닌 셈입니다.

제가 직접 가봤을 때 느낀 것도 비슷했습니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진열된 품목 수가 상당했고, 하나하나 이름이 독특했습니다. 나비파이, 공룡알빵, 무등산빵, 대상—이름만 들으면 뭔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이 이름들은 대부분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붙인 별칭이 굳어진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나비파이는 원래 "종이파이"였는데, 형태가 나비처럼 보인다고 손님들이 부르기 시작한 이름입니다. 공룡알빵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게에서는 프렌치 샌드위치 식으로 다른 이름을 붙였지만, 표면 질감이 공룡 화석처럼 보인다고 해서 손님들 사이에서 굳어진 명칭입니다.

이걸 마케팅 용어로 보면 일종의 바이럴 네이밍(viral naming)에 해당합니다. 바이럴 네이밍이란 기업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퍼진 이름이 브랜드 자산이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요즘 기업들이 이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독특한 이름을 기획하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53년 동안 손님들이 직접 붙여준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이 가게의 신뢰도를 어떤 마케팅보다 잘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국내 제과제빵 산업에서 50년 이상 운영되는 로컬 베이커리는 전국 통틀어 손에 꼽는다는 점도 짚어둘 만합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식점업 평균 생존율은 5년을 넘기는 경우가 절반 이하입니다(출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50년은 그 기준으로 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나비파이의 불편함이 오히려 정체성인 이유

나비파이를 두고 "먹기 불편한 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 빵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제가 직접 그 자리에서 먹어봤는데, 시럽이 손에 흘러서 휴지를 몇 장이나 썼습니다. "집에 사 가져갈까" 한참 고민하다 결국 1개만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먹었습니다.

나비파이는 파이 반죽을 얇게 층층이 쌓아 구운 뒤 시럽을 흠뻑 적신 빵입니다. 반죽의 층을 만드는 공정은 제빵 용어로 라미네이션(lamination)이라고 합니다. 라미네이션이란 버터와 반죽을 반복해서 접고 밀어 수십 겹의 결을 만드는 과정으로, 크루아상이나 데니시 페이스트리에 쓰이는 기법입니다. 나비파이는 이 구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겹겹이 쫄깃한 질감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중요한 건 먹는 방식입니다. 가게 측에서는 "손으로 찢어서 흐늘흐늘한 상태에서 먹어야 한다"고 권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한 입 베어 먹었다가, 시럽이 와르르 흘렀습니다. 찢어 먹으니 시럽이 설탕화(caramelization)되면서 완전히 다른 질감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설탕화란 시럽 속 당분이 공기와 접촉해 표면이 굳어지며 바삭한 층을 형성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상태에서 먹으면 폭신하면서도 살짝 딱딱한 표면이 겹치는데, 이게 나비파이만의 식감입니다.

요즘 디저트 트렌드는 대부분 원핸드 푸드(one-hand food) 방향으로 수렴합니다. 원핸드 푸드란 한 손으로 들고 걸으면서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형태의 음식을 말하며, SNS 사진 촬영과 이동 편의성을 동시에 충족시킵니다. 나비파이는 그 흐름과 정반대입니다. 그런데도 53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건, 편의성보다 고유한 경험이 오래 간다는 방증 아닐까요.

궁전제과에서 직접 시식하며 느낀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비파이: 시럽을 흠뻑 적셔 찢어 먹는 것이 정석. 그 자리에서 먹는 빵
  • 공룡알빵: 하드롤 안에 달걀 샐러드가 가득 들어 있는 묵직한 빵. 구운 버전은 상온 보관 가능
  • 대상: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넣어 튀긴 빵. 김치 산미가 느끼함을 잡아주는 구성

빵지순례 열풍, 그 전망과 한계

빵지순례라는 말이 생긴 지 꽤 됐습니다. 빵지순례란 맛있는 빵집을 목적지로 삼아 여행하는 트렌드를 말하며, 특정 지역의 유명 베이커리를 순회하는 방식으로 소비 문화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서울 태극당, 부산 옵스—이런 오래된 빵집들이 이 트렌드의 중심에 있고, 궁전제과도 그 반열에 들어간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SNS 기반 트렌드의 수명이 짧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한 식품 트렌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근 디저트 유행 사이클은 3~6개월로 단축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두바이 초콜릿, 탕후루, 두바이 카다이프—이름이 붙었다 사라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그렇게 보면 궁전제과처럼 유행과 무관하게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온 가게의 가치는 더 두드러집니다. 저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솔직히 말하고 싶습니다. 나비파이처럼 먹는 방법이 독특한 빵에 대해, 처음 방문하는 손님을 위한 안내가 매장 내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겁니다. 제 경험상 그 부분이 없어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찢어서 드세요"라는 한 줄짜리 문구라도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을 겁니다.

53년이라는 역사가 강점인 동시에, 새로 유입되는 손님에게 그 경험을 잘 전달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수 있습니다. 다음에 광주에 가면 줄을 기다리는 시간을 아예 즐길 작정으로, 빵 고르는 속도도 천천히 가져가 볼 생각입니다. 시럽이 손에 묻어도 괜찮도록 미리 손수건도 챙겨서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Q4czuGD5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