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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미실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질문이 남는 곳

by 카타리 2026. 7. 30.

여행을 다녀오고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머무는 공간이 있다. 단순히 “거기 참 좋았지, 예뻤지” 하고 끝나는 곳이 아니라,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속에 묵직한 생각과 질문을 던져주던 장소. 나에게는 곡성의 미실란이 바로 그런 곳이다.

"곡성에 가면 미실란은 꼭 가봐"

누군가 곡성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미실란을 이야기한다.

이건 그곳이 요즘 말하는 ‘인스타 감성’으로 화려하게 예쁘다거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유명 관광지라서가 아니다. 미실란은 시간을 보내는 결 자체가 달라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여행지가 “나 거기 가서 뭐 보고 왔다” 하는 소비적인 기억으로 남는다면, 미실란은 “나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고 왔다” 하는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그래서 꼭 한번 들러보라고, 마음을 담아 권하게 된다.

6년 전, 우연히 마주친 미실란 부부의 태도

내가 처음 미실란의 문을 열었던 건 약 6년 전이었다.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많이 나지도 않았던 때였고, 그저 고즈넉하고 조용한 시골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다.

시골의 작은 폐교를 다듬어 만든 공간. 아이들이 뛰놀던 넓은 운동장은 폭신한 잔디밭이 되어 있었고, 정겨운 교실 건물 안에는 은은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와 소박한 책방, 전시 공간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날 나는 운이 참 좋았다. 마침 미실란을 일구신 대표님 부부의 작은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으니까. 강연의 메시지 자체도 마음을 울렸지만, 내 가슴을 진짜 흔들어 놓았던 건 두 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였다.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나누던 따뜻한 눈빛, 서로를 향한 자연스러운 존중이 담긴 말투. ‘아, 부부가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게 바로 저런 거구나’ 하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질문 하나가 피어올랐다.

‘나도 저분들처럼 온전히 누군가를 존중하며 살 수 있을까? 내 삶에서도 저런 깊이가 가능할까...?’

여행지에서 얻어 온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일상으로 돌아와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꽤나 오래도록 가슴을 울렸다.

김탁환 작가가 서울을 떠나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

미실란이 가진 결이 한층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소설가 김탁환 작가의 삶이 이곳과 깊게 얽혀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왕성하게 글을 쓰던 유명 소설가가 어느 날 서울에서의 삶을 털어내고, 이곳 곡성 미실란에 작은 집필실을 차렸다. 단순히 시골로 내려온 게 아니라 직접 농사를 짓고, 마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진짜 ‘곡성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삶이 바뀌지 않으면 글도 바뀌지 않는다.”

그 한마디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미실란 대표님과 김탁환 작가가 함께 써 내려간 책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읽어보면, 이 공간이 왜 단순한 건물이 아닌지 알게 된다. 이곳은 한 사람, 아니 여러 사람의 고집스러운 철학과 삶의 궤적이 겹겹이 쌓여 숨을 쉬고 있는 장소다.

식당은 사라졌지만, 그곳의 본질은 그대로
최근에 정말 오랜만에 미실란을 다시 찾았다. 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모습도 조금은 변해 있었다. “어, 많이 바뀌었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예전에 따뜻한 밥 한 한 상을 대접받던 식당 공간은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미실란이 가진 특유의 온기, 그 본질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시끄러운 세상과 살짝 떨어져 조용히 사람을 머물게 만드는 힘, 가만히 앉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고요함. 그 깊은 공간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시간을 느끼는 법

미실란 마당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 조급함이 스르륵 녹아내린다. '다음 코스로 이동해야 하는데', '사진 찍어야 하는데' 같은 번잡한 생각이 싹 사라진다.

그저 그늘 아래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고, 책방에서 집어 든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자체가 감사해지는 곳. 그래서 미실란은 ‘시간을 소비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러 가는 곳’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미실란을 추천할 때면 늘 이 말을 덧붙인다.
“시간을 아주 넉넉하게 빼두고 가. 잠깐 휙 들러서 사진만 찍고 나오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니까.”

미실란을 제대로 만나는 방법

혹시 곡성 미실란에 발걸음을 하게 된다면, 일정 중에 작게 열리는 문화행사가 있는지 꼭 확인해 보시길 권한다. 강연이나 소소한 북토크, 작음 음악회 같은 프로그램에 잠깐이라도 참여해 본다면 내가 느꼈던 이 공간의 깊은 울림을 훨씬 더 진하게 배어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소소한 추천 코스: 미실란에서 시계 보지 않고 오래 머물기 → ( 운이 맞다면) 문화행사 참여해 보기 → 해 질 녘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천천히 산책하기

담담하게 전하는 당부

미실란은 화려한 구경거리나 짜릿한 즐길 거리가 가득한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러니 큰 기대를 안고 가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저 비워진 마음으로 찾아가 가만히 머물러 보셨으면 한다. 바람 소리를 듣고, 책을 넘기고, 그곳을 일궈낸 사람들의 온기를 가만히 느끼다 보면, 돌아오는 길 문득 스스로에게 다정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도 그렇게 사람 냄새나게 살 수 있을까.”